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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소개 및 연혁

학과소개

1. 학과 소개 및 목표

 

역사학 연구의 목표는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실증적으로 복원하거나 재구성하여 현대의 지침이 될 수 있는 진리를 탐구함에 있다. 사학과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체계적이고 다양한 교과과정을 개설하여 학문적 성취를 완성하도록 준비하고 있으며, 사학이 지닌 특수성을 염두에 두어 고적답사ㆍ발굴 등 각종 역사적 체험을 함께 실시하여 역사의 숨결을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있다.

 

2. 연세 사학의 전통과 연혁

 

* 연희전문 문과의 학문전통

지금의 연세대학교 사학과는 연희전문 문과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917년에 설립된 사립 연희전문학교는 일제하에 유일하게 문과를 가진 국학연구의 요람이자 민족사학의 최고 중심축이었다. 일제의 감시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공개적으로, 때로는 강의 이름을 바꾸어 가면서 민족정신과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진력하였다. 특히 역사학과의 정인보, 백낙준, 손진태 등은 일제의 식민사학에 맞선 민족사학의 중심이었으며, 이에 상과의 백남운 등이 연전의 역사연구에 힘을 더해주면서 민족사학의 지평은 더욱 넓어졌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을 전후하여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본격화되었으며, 민족사학의 요람인 연희전문은 직접적인 탄압대상이 되었다. 이에 반일성향의 교수들은 강제로 퇴직당하거나 검거되었는데, 1937년에는 백낙준ㆍ백남운, 1938년에는 최현배ㆍ이윤재가 학교를 떠나야 했다. 정인보도 1938년부터 휴직하였으며, 보성전문으로 자리를 옮긴 손진태는 1941년까지 강사로 출강하였다. 1940년 이인영ㆍ이홍직 등이 강사로 출강하여 국학연구의 맥을 이었지만 1941년 태평양전쟁에 즈음한 일제의 탄압으로 한국사연구와 강의는 불가능해졌다. 다만 조의설만이 전공인 서양사 이외에도 일본사ㆍ사학개론 등을 담당한 전임교원으로 고군분투하였다.

 

* 사학과의 창립과 수난, 재건

해방 후 연희전문의 교수진은 학교의 재건에 나섰으며, 1946년 8월 15일 미군정의 정식 인가를 얻어 연희대학교가 설립되었다. 사학과도 이때 설립되었는데, 다른 대학에 비해 비교적 빨리 전공별 강의와 연구체제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는 일제하 연희전문 시절에 형성된 문과의 전통이 그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며, 당시의 교수진 역시 연전시절의 교수를 중심으로 한 백낙준ㆍ조의설ㆍ민영규ㆍ홍순혁ㆍ염은현ㆍ이인영ㆍ이홍직 등이었다.

사학과 창립 이듬해인 1947년에는 교수ㆍ동문ㆍ학생이 합심하여 학술조직인 사학연구회(史學硏究會)를 결성하고, 한국전쟁 전까지 8회에 걸친 연구발표회를 개최하였다. 1950년에는 그간의 연구를 정리한 학회지 『史學會誌』(學林 제1집)이 간행되었고, 6월에는 대학원이 설치되었다. 또한 연희전문 출신인 염은현ㆍ홍이섭ㆍ김일출ㆍ민영규 등은 1950년 12월 25일에 창립된 역사학회의 초기 운영을 주도하여 오늘날의 역사학회에 그 바탕을 다지는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1950년의 한국전쟁은 사학과에 큰 시련을 주었다. 이인영ㆍ정인보를 비롯한 교수를 잃었으며, 전쟁 직전에 발간되었던 『학림』 1집은 한부도 남김없이 분실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학문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교수ㆍ동문ㆍ학생들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부산피난시절인 1952년 월 신학기부터 사학연구회를 재정비하고 이후 꾸준히 연구발표회를 진행하였다. 특히 1952년 10월의 제 10회 연구발표회는 ‘제1차 사학대회’라 칭하였는데, 대학 자체의 사학대회로서는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울러 피난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사학과의 정기 답사는 계속 진행되었다. 고적답사 및 답사보고회는 봄과 가을 2회에 걸친 사학과의 연례행사로 현재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져 연세 사학인의 유대와 학문적 열의를 진작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1953년 8월 서울로 복귀한 후 문과대학은 지금의 본관 서편에 자리를 잡았으며, 홍이섭ㆍ이홍직 등 새로운 교수진과 이광린ㆍ이옥 등의 강사진을 보강하는 등 학과재건을 의욕적으로 진행하였다. 사학연구회의 활동도 더욱 활발해져서 서울 복귀 직후인 1953년 11월 21일의 제17회 연구발표회를 시작으로 매년 2~4회의 연구발표회가 이루어졌다. 또한 그 성과지인 『史學會誌』는 1954년부터 『學林』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여러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오면서 연세사학의 전통을 대변하고 있다.

 

* 민족사학의 부흥과 발전을 위한 준비

1957년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의대가 합병하여 그 이름을 연세대학교로 바꾸었다. 연세대학교 사학과는 식민사관의 잔재와 문헌고증주의의 위력 속에서도 연희전문에서 시작된 민족사학의 명맥을 꾸준히 이어왔다. 또한 196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식민사관의 청산과 민족사학의 부흥에도 그 중심이 되었다. 특히 홍이섭은 문헌고증사학의 실증적 태도가 갖는 한계를 지적하고, 한국사 전체에 대한 주체적 역사인식과 이해를 강조하였다. 1961년에 부임하여 한국중세사를 담당한 이종영과 1964년 부임하여 고려시대사와 발굴활동에 크게 기여한 손보기의 노력도 있었다. 또한 1974년에 별세한 홍이섭 교수의 후임으로 부임한 김용섭은 식민사관을 비판하고 내재적 발전의 시각에서 한국근현대 농업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민족사학과 사회경제사학의 두 흐름을 계승, 발전시켰다.

동양사에서는 고병익 교수를 거쳐 황원구가 부임하면서 민영규와 함께 연세 국학의 시각이 아시아사로 확대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서양사에서는 조의설 교수가 1971년 은퇴하고 김정수ㆍ김동길ㆍ고성환 등이 합류하였다. 이상과 같이 1960년을 전후해서 1970년대 초반에 이르는 동안 사학과의 교수진은 한국사ㆍ동양사ㆍ서양사의 3분야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또한 1977년 동방학연구소가 국학연구원으로 새롭게 개편, 발족되면서 국학연구 요람으로서의 위치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 학생수의 증가와 교수진의 확대

 

1980년대 이후의 사학과는 연세대학의 도약과 발맞추어 여러 면에서 확장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우선 군사정권의 ‘졸업정원제’ 시행으로 사학과의 입학 정원이 크게 증가하였다. 이에 맞추어 교수진 역시 확충되었는데, 1981년 하현강 교수가 부임하여 고려시기 정치제도사를 담당하였다. 또한 1982년 박영재 교수가 부임하여 일본사를 강의하면서 일본사에 대한 학문적 관심도 크게 증가하였다. 특히 1990년대 초반은 사학과의 교수진이 크게 보강되던 시기였다. 1993년 김준석 교수가 조선시대사를 맡았으며, 1994년에는 한국현대사 담당으로 방기중 교수가, 고대사 담당으로 주용립 교수가 연이어 취임하였다. 동양사에서는 1991년 중국중세사를 전공한 김유철 교수가 부임했으며, 1994년 중국현대사 전공의 백영서 교수가 부임해왔다. 서양사에는 1992년에 프랑스사를 전공한 전수연 교수가 부임했다. 이처럼 교수진이 늘어나면서 연세사학은 교육과 연구 양면에서 확장되는 추세를 보인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그간 70ㆍ80년대 연세 사학의 발전에 헌신했던 교수의 정년퇴과 더불어 새로운 교수 진용이 짜여졌다. 한국사 분야에서는 김용섭ㆍ하현강ㆍ주용립 교수가 정년퇴임 혹은 퇴임하였으며, 이어 한국근대사를 전공하는 김도형 교수와 한국 고중세 사를 전공하는 하일식 교수가 2000년 부임했다. 2001년에는 고려시대 사상사를 전공하는 도현철 교수가 부임했다. 그러나 2002년 김준석 교수가 별세함으로서 조선시대사 강의에 공백이 생겼는데, 이는 2003년 최윤오 교수가 부임함으로서 메워졌다. 또한 손보기 교수 퇴임 이후 10 여 년간 중단되었던 고고학 전공강의가 2002년 박영철 교수의 부임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이어 2005년에는 김성보 교수가 부임하여 현대사 분야의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동양사 분야에서는 2003년 박영재 교수가 은퇴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생긴 공백은 같은 해 9월 일본근현대사를 전공한 임성모 교수가 부임함으로서 회복되었다. 그리고 황원구 교수 퇴임 이후 비어 있던 명청시대사 분야는 2005년 차혜원 교수의 부임으로 메워져 현재 동양사에는 4명의 교수진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서양사 분야에서는 1996년에 독일사 전공의 홍영선 교수가 부임했으나 1년 동안의 재직 후 뉴욕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2003년 서양 문화사ㆍ사회사를 전공한 설혜심 교수가 부임하였다. 그리고 2005년에는 1979년 이래 오랫동안 영국사와 서양 근대사 강의를 담당해 왔던 최선홍 교수가 퇴임하였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후반부터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에 부응하여 새로운 강의를 개설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며, 그 일환으로 박사학위를 마친 전문 연구인력에게 강의를 맡기는 추세가 자리 잡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강의를 수행하고 있는 강사진의 노력은 사학과의 전공교육에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 또 다른 연세사학으로서의 원주 사학과(역사문화학)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의 사학과(현 역사문화학과)는 연희전문 시절 국학의 이념과 민족해방의 정신사적 맥락을 잇고자 1989년도에 신설되었다. 1978년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을 모체로 출범한 원주캠퍼스에는 1980년 10월 원주대학으로 승격되면서 영문과와 국문과가 차례로 설립되었다. 이어 1989년 10월 인문학부에 사학과가 처음으로 설립되었는데, 이는 문리대학 제3대 학장이자 초대학과장을 역임한 이희덕 교수의 공헌이 컸다. 1990년 3월 사학과 첫 입학생을 맞이하고 한국사ㆍ동양사ㆍ서양사의 기초ㆍ전공과목을 개설하였는데, 이희덕 교수를 비롯하여 신촌 연세대학교 사학과의 교수와 강사진이 수업을 담당하였다.

1992년에는 동양사 전공의 지배선 교수가 부임했으며, 1994년에는 조선시대사ㆍ향촌사회사를 전공한 오영교 교수가 부임하였다. 1998년에는 한국고중세사를 전공한 이인재 교수가 부임했으며, 2002년에는 한국근대사 전공의 왕현종 교수가 부임하였다. 또한 같은 해 서양사 강좌를 담당하는 강의전담교수로 서이자 교수가 부임하여 짜임새 있는 교수진과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처럼 역사문화학과가 자리를 잡는 과정에는 매학기 빼놓지 않고 시행되었던 답사가 큰 역할을 하였다. 백제문화권, 신라문화권, 가야문화권, 원주권 불교문화유적 등 주제답사를 통해 역사학도로서의 관심과 공부에의 열의를 촉발시킨 것이다. 이런 열망에 힘입어 1992년 일반대학원 원주 사학과 석사과정이 신설되어 2006년까지 13명의 석사를 배출하였고, 지금도 다수의 석사ㆍ박사생이 연세 사학의 전통 아래 학문에 정진하고 있다.